Artist’s Notes 
For Solo Exhibitions



모른다는 것에 대한 열망


 나는 전시를 할 때마다 어떤 책에 혹은 어떤 작가에게 기대며 걸어가는 것 같다.
 이번 전시는 그런 점에서 거의 베케트의 글귀에 기대어 갔다. <저글링하는 사람>(2020, Single Channel Video) 속에는 그의 글을 일부 차용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베케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알 수 없는 곳에 놓여있는 나를 보게 된다. 외국어를 이용하는 작업을 많이 했던 나는 나의 의식이, 나의 관습이, 나의 모국어가 규정하려는 것에서 도망치는 사람이었다. 한없이 도망치다 보니 여기에 있다.

 전시 제목인 <당신은 믿은 게 아니라 속은 거야>는 전시 속 작품마다 희미하게 그려지는 인물들이 헤메고 있다는 점과 그들이 겪는 혼란과 어리석음을 전체적으로 묶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믿는 것과 속는 것은 대치되는 말이 아니다. 속는다는 것은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속았다는 사실을 ‘모르면 믿음은 유예된다.



2020, Dec
 
전시
<당신은 믿은 게 아니라 속은 거야>(2020,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에 대한 노트 






없는 것을 고집스레 바라보기
 


‘바다’는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이었다. 부산에 있는 동안 이곳에서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가까이 위치한 바다를 나는 계속 의식했고, 어디를 가든 나는 바다를 끌고 다니는 것 같았다.

여기서의 짧은 5개월을 제외하고, 오래전 나는 이국의 바다 근처에 살았던 시기가 한 번 있었다. 당시에도 나는 외지의 섬에서 그 무거운 바다를 끌고 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시간을 계기로 나는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그때의 바다를 다시 길어 올려 지금의 바다와 교차해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는 과거와 현재가 물거품의 소용돌이 속에서 잃어버린, 이제는 없는 것들을 향한 고집스럽고도 무의미한 추적을 담고있다.

  난 바다를 본 적 없는 사람에게조차 자신만이 아는 바다가 있다고 믿는다. 사막을 본 적 없는 나는 나만이 아는 사막이 있다. 수영을 못하는 나에게 바다는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데려간 금지된 땅이며,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는 내가 시간에게 빼앗긴 것들이 침몰하며 부르는 레퀴엠이다.


2022, Sep

전시
<수영을 못하는 사람의 바다>(2022, 홍티아트센터)에 대한 노트 







홈커밍: 사육장으로 돌아오다


온 마음으로 한 번도 쉬지 않고 백석 시인을 동경해 왔다. 시어 하나하나가 깨질 듯 조심스러워 나는 처음 아이를 대하는 사람처럼 어설프게 안아본다. 내 어정쩡한 두 팔로 그 약한 단어들을 품에 끌어당기면 나는 강해진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흠모하는 시는 ‘북방에서’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노트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매번 새 노트를 사고 나면 거의 처음 하는 일은 ‘북방에서’를 옮겨쓰는 일이었다. 그 시는 언제나 나보다 약했고 나보다 혼자였다. 그것이 늘어선 검은 활자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렇게 10년이 넘게 그 시를 가지고 다녔다. 역설적이지만 혼자 되는 것에 대한 쓸쓸하고 비루한 풍경이 빈틈 없이 말없이 내 옆을 지켜준 셈이었다.

‘북방에서’의 화자처럼 만류를 뒤로하고 호기롭게 떠나본 사람에게 빈털터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만 하는 모욕을 안고 돌아왔을 때. 내가 다른 것과 함께 질량 없는 과거가 되었음을 인정해야 할 때. 혹시라도 남겨져 있을 거라 기대한 정다운 것들 모두 보이지 않고. 여기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본다. 그렇게 구차함을 견디며 돌아왔으나 애초에 텅 빈 사람은 한곳에 정착해도 떠돈다. 결국 한자리에 매여서도 헤매는 동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돌아오는 것이 담고 있는 절망과 희망의 기막힌 비율이 나를 얼마나 헷갈리게 했는지. 지치게 했는지. 시달림은 끝나지 않고, 매일 밤 부드럽고도 험악한 얄궂은 손길로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래서 글을 썼다. 쉽게 사라질 것들을 세웠다. 나는 버린 사람이고, 버려진 사람이고, 남은 사람이고, 탈주한 사람이고, 더럽혀진 머리카락과 길게 자란 손톱과 휘청이는 다리를 이끌고 귀환한 사람이다. 당연히 거기엔 어떤 영광도 없다. 다만—

다만, 가끔 어떤 따끔거리는, 가려운, 혹은 울렁거리는, 둔탁했다가도, 날카롭기도 한 그런 통증을 느꼈다. 그건 무엇도 쥔 것 없는 손바닥 위에 놓인 또렷한 과거의 증거였다. 잊을만하면 잊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끈질기게 사라진 것을 상기시켰다. 그렇게 통증이 기억과 함께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을 지탱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 넓은 곳, 이 빈 구덩이 안,
나는 아프면 비로소 가능해지는 기묘한 섭리 속에 있다.

2023, Aug

전시
<Polar>(2023, 김희수아트센터)에 대한 노트



All Contents ⓒSu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