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과 장님
Dimensions Variable
Single Channel Video, 5'29 and Object Installation (Scholar Stone and Timed Lighting)
<유령과 장님>은 무빙 이미지의 텍스트와 오브제 설치가 결합된 작업이다. 2012년 유튜브를 통해 접한 독일 출신의 영화·다큐멘터리 제작자, Werner Herzog의 ‘Encounters at the End of the World’ (2007) 속 짧은 클립에는 남극의 펭귄 무리에서 빠져나온 한 펭귄이 무리와는 반대되는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무리로부터 자발적으로 떨어져 죽음이 예정된 방향인 산을 향해 걸어가는 펭귄의 뒷모습을 찍은 이 장면이 준 강렬한 인상은 비디오 속 글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 '허허벌판의 공간에서 예측하지 못할 다양한 불안을 이겨내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또한 '저렇듯 홀로 걸어가는 펭귄에게 만약 동행자가 등장한다면 그들은 같은 꿈(희망)을 공유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상상을 기반으로 ‘유령’과 ‘장님’이라는 등장인물을 만들어냈다.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모호해지는 두 캐릭터의 정체로 관람자는 끝내 누가 장님인지, 누가 유령인지 혹은 둘 다 유령인지 장님인지, 둘 다 유령도 장님도 아닌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불분명한 두 인물의 정체는 언어로 규정된 세계에서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또한 이 두 등장인물이 계속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산’의 실체 또한 모호하게 그려져 이것이 실재인지, 환영인지, 믿음인지 밝혀지지 않는다. 특히, 산의 형상을 한 수석을 밝히는 조명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이러한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이렇듯 불분명한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두 인물이 마지막 순간까지 산을 향해 걸어가는 지속적 행위만이 발생한 사건이며, 이 반복만이 잔상으로 남는다. 결국 이는 어떤 행위를 이어감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규명하고 당위성을 피력하려 하지만 끝내 실패하는 개인과 분류하고 정의하는 언어의 한계와 무력한 이면을 은유한다.